성경의 모든 기도
8월 8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한인교회
작성일
2024-08-08 05:00
조회
109
성경의 모든 기도™ 울란바타르 한인교회 새벽말씀기도회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8월 8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이 썩어질 몸 안에서 태어난다면, 주님의 거룩하신 순전하심과 단순하심과 하나님과 하나 됨이 내 안에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습니까?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처녀 마리아에게 실제 가능한 일이었다면 모든 성도들에게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해 내 안에 태어나십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의 권세를 행사하게 되고 아버지를 언제나 얼굴과 얼굴로 대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적으로 의아한 마음으로 나의 상식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왜 여기서 내가 좌절해야 하지? 내가 아버지의 일로 마음이 사로잡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상황과 상관없이 그 거룩하고 순결하신 영원한 아들께서는 아버지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합니까? 주님께서 내 안에서 주의 놀라우신 일들을 마음대로 하시도록 마음을 비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을 만큼 내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빚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조심스럽게 주님을 한쪽으로 밀쳐내고 있습니까? 오, 최근의 그 모든 난리들! 모든 사람이 난리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난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 위해 난리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계실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조용하고 거룩한 교제를 나눌 공간과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그분께 지휘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셨던 것처럼 지금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지나십니까? 가장 성숙한 성도들의 내면 세계를 알수록 무엇이 하나님의 목적인지 더 잘 보게 됩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 “채운다”는 뜻은 언제나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Prayer in the Father’s Honor
By Oswald Chambers
…that Holy One who is to be born will be called the Son of God. —Luke 1:35
If the Son of God has been born into my human flesh, then am I allowing His holy innocence, simplicity, and oneness with the Father the opportunity to exhibit itself in me? What was true of the Virgin Mary in the history of the Son of God’s birth on earth is true of every saint. God’s Son is born into me through the direct act of God; then I as His child must exercise the right of a child— the right of always being face to face with my Father through prayer. Do I find myself continually saying in amazement to the commonsense part of my life, “Why did you want me to turn here or to go over there? ‘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 (Luke 2:49). Whatever our circumstances may be, that holy, innocent, and eternal Child must be in contact with His Father.
Am I simple enough to identify myself with my Lord in this way? Is He having His wonderful way with me? Is God’s will being fulfilled in that His Son has been formed in me (see Galatians 4:19), or have I carefully pushed Him to one side? Oh, the noisy outcry of today! Why does everyone seem to be crying out so loudly? People today are crying out for the Son of God to be put to death. There is no room here for God’s Son right now— no room for quiet, holy fellowship and oneness with the Father.
Is the Son of God praying in me, bringing honor to the Father, or am I dictating my demands to Him? Is He ministering in me as He did in the time of His manhood here on earth? Is God’s Son in me going through His passion, suffering so that His own purposes might be fulfilled? The more a person knows of the inner life of God’s most mature saints, the more he sees what God’s purpose really is: to “…fill up in my flesh what is lacking in the afflictions of Christ…” (Colossians 1:24). And when we think of what it takes to “fill up,” there is always something yet to be done.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8월 8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이 썩어질 몸 안에서 태어난다면, 주님의 거룩하신 순전하심과 단순하심과 하나님과 하나 됨이 내 안에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습니까?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처녀 마리아에게 실제 가능한 일이었다면 모든 성도들에게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해 내 안에 태어나십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의 권세를 행사하게 되고 아버지를 언제나 얼굴과 얼굴로 대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적으로 의아한 마음으로 나의 상식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왜 여기서 내가 좌절해야 하지? 내가 아버지의 일로 마음이 사로잡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상황과 상관없이 그 거룩하고 순결하신 영원한 아들께서는 아버지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합니까? 주님께서 내 안에서 주의 놀라우신 일들을 마음대로 하시도록 마음을 비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을 만큼 내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빚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조심스럽게 주님을 한쪽으로 밀쳐내고 있습니까? 오, 최근의 그 모든 난리들! 모든 사람이 난리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난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 위해 난리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계실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조용하고 거룩한 교제를 나눌 공간과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그분께 지휘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셨던 것처럼 지금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지나십니까? 가장 성숙한 성도들의 내면 세계를 알수록 무엇이 하나님의 목적인지 더 잘 보게 됩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 “채운다”는 뜻은 언제나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Prayer in the Father’s Honor
By Oswald Chambers
…that Holy One who is to be born will be called the Son of God. —Luke 1:35
If the Son of God has been born into my human flesh, then am I allowing His holy innocence, simplicity, and oneness with the Father the opportunity to exhibit itself in me? What was true of the Virgin Mary in the history of the Son of God’s birth on earth is true of every saint. God’s Son is born into me through the direct act of God; then I as His child must exercise the right of a child— the right of always being face to face with my Father through prayer. Do I find myself continually saying in amazement to the commonsense part of my life, “Why did you want me to turn here or to go over there? ‘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 (Luke 2:49). Whatever our circumstances may be, that holy, innocent, and eternal Child must be in contact with His Father.
Am I simple enough to identify myself with my Lord in this way? Is He having His wonderful way with me? Is God’s will being fulfilled in that His Son has been formed in me (see Galatians 4:19), or have I carefully pushed Him to one side? Oh, the noisy outcry of today! Why does everyone seem to be crying out so loudly? People today are crying out for the Son of God to be put to death. There is no room here for God’s Son right now— no room for quiet, holy fellowship and oneness with the Father.
Is the Son of God praying in me, bringing honor to the Father, or am I dictating my demands to Him? Is He ministering in me as He did in the time of His manhood here on earth? Is God’s Son in me going through His passion, suffering so that His own purposes might be fulfilled? The more a person knows of the inner life of God’s most mature saints, the more he sees what God’s purpose really is: to “…fill up in my flesh what is lacking in the afflictions of Christ…” (Colossians 1:24). And when we think of what it takes to “fill up,” there is always something yet to be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