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목회 칼럼

고집 쎈 늙은 말 (2023.04.09)

작성자
한인교회
작성일
2023-04-05 07:23
조회
163
고집 쎈 늙은 말 (2023.04.09)

이상수 목사

몽골의 여름 초원은 그저 아름답습니다. 그곳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 집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로 떠오르는 태양도, 저 멀리 지는 햇살도 따사롭습니다. 그 초원의 푸르름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파란 하늘에 눈길이 머뭅니다. 초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어도 발끝에서부터 ‘힐링’되는 느낌이 오니까요. 불멍, 물멍이 아닌 풀멍이 가능한 곳 몽골입니다.

한국에서의 여행처럼 계획표를 많이 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레크리에이션을 하고,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그렇게 계획하지 않아도 됩니다. 계획을 해도 그대로 안 될 때도 많지만요. 그렇게 쉼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몽골, 몽골의 여름이 아닐까 합니다. 그 몽골의 여름 초원에서의 이색적인 체험 중의 하나가 바로 승마, 말 타기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여행객들은 테렐지 국립공원이나 초원에 준비된 장소에서 안전교육을 받고 승마를 하게 되는데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말을 타고 한 두 시간 정도 초원을 산책하는 정도의 코스입니다.

말들도 몽골의 나담 경기와 세상 풍파(?)를 다 겪고 은퇴한 말들이 대부분이라 대체로 순합니다. 가끔은 가이드와 함께 초원을 달리기도 하는데 대체로 타박타박 초원을 걷습니다. 아직 세상 모르는 젊은 말들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주인의 말을 잘 듣다 보니 평온한 산책이 이어지지요. 하지만 말이 원래 겁이 많은 동물이라고 하네요. 자기 그림자에도 놀라는 편이라 하니까요. 그래서 놀라면 앞발을 들기도 하니 항상 낙마,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말들이 주인의 말을 잘 듣다 보니, 처음 말을 탄 여행객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가이드가 일러주는 대로 ‘츄 츄’해도 말이 여행객의 말을 들을 리 만무합니다. 그리고 말이 예민하고 똑똑한 동물이라 대부분 이 사람이 처음 말을 타는지도 안다고 하네요. 그래서 승마 기술이 없는 초보자 같으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지요. 자기 마음대로 가고, 가다가 풀 뜯고 하지요.

몽골에서 말을 몇 년 타다 보니 멋진 기술은 없어도 제법 말이 말 듣게 탈 줄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말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여름에 온 팀 중의 한 명이 탔는데 말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여 제가 그 말을 맡게 되었지요.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해 강하게 올라타고 제가 배우고 아는 모든 것을 다해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런 고집 쎈 늙은 말을 보았나!’

결국 말에서 내려서 고삐를 느슨하게 쥐고 조금 앞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도 생명인데, 힘이 들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정이 있을 것인데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웬걸 슬슬 따라 옵니다. 그러더니 풀도 뜯고 냇물도 마시고 어느새 함께 저와 산책을 하고 있더라구요. 말에게 고집이 쎄다 했지만, 실은 돌아보면 그것도 제 고집 아니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에서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이라 포장한 우리의 욕심, 바램, 고집들 말이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찬찬히 믿음으로 걷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