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목회 칼럼

자라다 만 풀꽃들 (2023.04.16)

작성자
한인교회
작성일
2023-04-13 05:48
조회
137

자라다 만 풀꽃들 (2023.04.16)

이상수 목사

푸른 몽골의 초원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합니다. 그 초원의 먼 지평선을 아득히 바라보면, 지고 있는 해의 아쉬움마저 포근합니다. 이른 아침 이슬 젖은 초원도 산책하기에 참 좋습니다. 바닥에 낮게 자란 풀들이 이슬을 머금곤 신발과 바짓단 아래만 간지럽히기 때문이지요. 몽골의 초원에 풀들은 그렇게 자라다 만 듯 바닥에 겨우 붙어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요. 풀들도 나무도 그렇게 자랍니다.

본래 몽골의 풀들은 작은가 보다 생각을 했습니다. 울란바타르 도심과 근교만 해도 지리산 중턱에 해당하는 해발 1,500m 전후니까요. 연간 강수량도 300~350mm 정도로 엄청 작습니다. 한국에 여름 장마철 하루 오는 비의 양 정도 될까요? 그 정도의 비를 1년으로 나누어 여름비와 겨울눈으로 내린다면 얼마나 적은 양인지 감이 오시지 않나요. 건조하고 풀들이 잘 자랄 환경이 아닌 것이지요. 영하 50도의 겨울과 9월 말이면 오기 시작한 눈이 6월에도 오니 풀들이 자랄 시간도 짧지요.

몇 해 전 이상하다 싶을 만큼 봄과 여름에 비가 많이 온 적이 있었는데요. 자라지 않을 듯 보이는 풀들이 몇 배 더 크게 자라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안자란 풀들이 아니라 못자란 풀이었네요. 그러곤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풀들이기에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까. 그리고 걷던 걸음을 멈추곤 앉아 자세히 보기 시작했지요. 제가 모든 풀꽃들의 이름을 알진 못하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 보던 몇몇 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질경이, 민들레, 명이, 쑥, 엉겅퀴, 물매화 그리고 에델바이스? 걷다가 앉다가 자세히 본 풀꽃들은 더 이상 자라다 만 듯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작고 낮은 자리에 있었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더 정교하게 품고 있었지요. 그리고 명이를 좀 뜯어 절여 보고, 쑥을 좀 뜯어 맛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향이 강하고 맛도 더 하든지요. 환경이 열악하여 자라지 못한 듯 보인 그 안에 더 깊은 향과 맛이 깃들여 있었던 것이지요.

같은 이유로 몽골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차가 버섯 등 천연 재료도 효능이 더 좋다 합니다. 강수량이 적고 높은 해발 등 악조건이 오히려 강점이 된 것이지요. 또한 한국에서는 오래된 고택의 기와지붕에서 자란다는 대표적인 항암식물 와송도 몽골에서는 그 낮은 잔디밭에 말똥과 함께 깔려 있습니다. 한국에는 자라지 않고 백두산 바위틈에 가야 볼 수 있다는 희귀약초 홍경천도 지천이라지요.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약초를 찾아 여름에 몽골을 오시는 분들도 종종 뵐 수 있지요. 또한 몽골로 오셔서 약초를 재배하며 농업을 연구하는 분들도 계시지요.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요? 농사, 작황에 좋지 않던 기후라 유목 생활을 해야만 했던 환경이 자세히 보니 또 다른 가능성과 희망을 품고 있네요.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제 희망이 없다, 달라지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와 이웃의 신앙도 말이지요. 자세히 보면 자라지 않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더 많은 사랑과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