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목회 칼럼
두려움으로 믿는가? (2023.03.19)
작성자
한인교회
작성일
2023-03-15 15:11
조회
259
두려움으로 믿는가? (2023.03.19)
이상수 목사
몽골은 불교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20년 공산국가가 되기 전 마지막 황제는 불교 수장의 역할도 했기 때문이지요. 1990년 민주주의로 들어서며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고 민족주의와 함께 불교가 몽골의 전통 종교라며 자리 잡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불교가 민간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어간입니다. 그리고 청나라의 몽골 지배 200년의 시간에 뿌리가 깊어졌지요.
본래 몽골은 바이칼에서 시작된 샤머니즘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흔적은 한국의 민간신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몽골에서 존경하는 스승의 의미로 사용되는 ‘박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배워서 일을 하는 무당에게 ‘박수’무당이라고 하지요. 그 뿌리가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국과 몽골에는 참 많은 이런 이야기 거리가 있지요. 몽골의 돌을 쌓아 올린 ‘어워’나 나무에 묶인 색색의 천들도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닮았습니다.
칭기스칸이 12세기 몽골을 통일 할 때 큰 조력자 역할을 한 사람들이 이 무당, 샤먼, ‘버어(бөө)’입니다. 단순히 점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은 언론이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였기 때문이지요. 인생의 길흉화복을 말해주는 존재 앞에 함부로 다른 의견을 내기는 쉽지 않지요. 그런 존재가 칭기스칸의 편을 들어 주어 몽골이라는 나라가 서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칭기스칸의 통일 전에 몽골은 초원에 흩어져 살아가는 여러 부족 국가였습니다. 부족들마다 신앙이 있었지요. 그 여러 신앙들이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칭기스칸이라는 위대한 리더쉽 아래 모이게 된 것이지요. 역사를 살펴보면 그 부족들의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칭기스칸 본인은 따로 종교가 있다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신앙들을 존중했다 하지요.
재미있는 것은 칭기스칸이라는 큰 우산 아래 불교, 무속 뿐만 아니라 이슬람, 기독교 신앙도 있었다는 것이죠. 실은 기독교가 몽골에 전해 진건 불교보다도 더 먼저입니다. 역사에 따르면 4세기와 7세기에도 기독교 전파가 있었고, 칭기스칸의 몽골 통일 당시에도 기독교를 신앙하는 부족들도 있었다 하지요. 초원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빛으로 인도한 기독교 신앙 이야기들을 들어 보셨나요?
그래서 어떤 선교사님들은 ‘우리가 몽골에 처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잊고 있는 복음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시대에 이념으로 다가온 종교도 아니고 삶의 막막한 두려움을 점쳐 주는 신앙도 아니지요. 우리가 믿는 신앙은 우리의 욕망을 채워 준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진실과 진리의 빛을 비추어 삶과 존재의 본질을 보게 하지요. 지금 당신이 쥐고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 큰 영원이 있음을 깨닫게 하지요.
다시 돌아봅니다. 우리는 단순한 삶의 두려움이 아닌 영원의 은혜로 기뻐하는가? ®
이상수 목사
몽골은 불교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20년 공산국가가 되기 전 마지막 황제는 불교 수장의 역할도 했기 때문이지요. 1990년 민주주의로 들어서며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고 민족주의와 함께 불교가 몽골의 전통 종교라며 자리 잡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불교가 민간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어간입니다. 그리고 청나라의 몽골 지배 200년의 시간에 뿌리가 깊어졌지요.
본래 몽골은 바이칼에서 시작된 샤머니즘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흔적은 한국의 민간신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몽골에서 존경하는 스승의 의미로 사용되는 ‘박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배워서 일을 하는 무당에게 ‘박수’무당이라고 하지요. 그 뿌리가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국과 몽골에는 참 많은 이런 이야기 거리가 있지요. 몽골의 돌을 쌓아 올린 ‘어워’나 나무에 묶인 색색의 천들도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닮았습니다.
칭기스칸이 12세기 몽골을 통일 할 때 큰 조력자 역할을 한 사람들이 이 무당, 샤먼, ‘버어(бөө)’입니다. 단순히 점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은 언론이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였기 때문이지요. 인생의 길흉화복을 말해주는 존재 앞에 함부로 다른 의견을 내기는 쉽지 않지요. 그런 존재가 칭기스칸의 편을 들어 주어 몽골이라는 나라가 서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칭기스칸의 통일 전에 몽골은 초원에 흩어져 살아가는 여러 부족 국가였습니다. 부족들마다 신앙이 있었지요. 그 여러 신앙들이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칭기스칸이라는 위대한 리더쉽 아래 모이게 된 것이지요. 역사를 살펴보면 그 부족들의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칭기스칸 본인은 따로 종교가 있다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신앙들을 존중했다 하지요.
재미있는 것은 칭기스칸이라는 큰 우산 아래 불교, 무속 뿐만 아니라 이슬람, 기독교 신앙도 있었다는 것이죠. 실은 기독교가 몽골에 전해 진건 불교보다도 더 먼저입니다. 역사에 따르면 4세기와 7세기에도 기독교 전파가 있었고, 칭기스칸의 몽골 통일 당시에도 기독교를 신앙하는 부족들도 있었다 하지요. 초원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빛으로 인도한 기독교 신앙 이야기들을 들어 보셨나요?
그래서 어떤 선교사님들은 ‘우리가 몽골에 처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잊고 있는 복음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시대에 이념으로 다가온 종교도 아니고 삶의 막막한 두려움을 점쳐 주는 신앙도 아니지요. 우리가 믿는 신앙은 우리의 욕망을 채워 준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진실과 진리의 빛을 비추어 삶과 존재의 본질을 보게 하지요. 지금 당신이 쥐고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 큰 영원이 있음을 깨닫게 하지요.
다시 돌아봅니다. 우리는 단순한 삶의 두려움이 아닌 영원의 은혜로 기뻐하는가? ®